강상중 교수(도쿄대학)
오늘 강연의 세 가지 키워드는 동북아, 공론장(public sphere), 저널리즘이다.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의 일반적인 전국 신문들은 동북아시아라는 말 대신 북동아시아라는 말을 사용한다. 한국이나 북한, 중국에서 동북아라고 부르는 것과 다르다. 왜 그러는가? 북동아라는 말은 동북아에 대한 영어표현인 'Northeast Asia'를 직역한 것인데, 영어표현 'Southeast Asia'를 남동아라고 하지 않고 동남아라고 부르는 것과 비교된다. 이것은 일본의 저널리즘이나 학계가 동북아 지역을 태평양 건너편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의 시각을 통해 이 지역을 바라본 것이다. 오늘은 미국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미국의 그늘이란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적개심, 불안, 적의에 의해 형성되는 '공적인 문제'
일본의 저널리스트와 연구자들은 일본 언론의 북한 보도 행태에 대해 말하지 않고서는 일본의 미디어 현상을 얘기할 수 없다. 과거 북한에 대한 보도는 엄청난 것이었고 이 문제는 현재진행형으로 지금도 막대한 문제가 있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가장 큰 문제는 '공적인 것'이 위축되거나 혹은 변질된다는 것이다. 세계화는 단순히 경제, 금융,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공적인 것으로서의 정치가 없어지고, 위축되고, 축소되고, 변질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1998년 바우만(Z. Bauman)이란 학자는 <정치의 발견(In search of politics)>이란 책에서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했다. 형기를 마친 아동 성범죄자가 어떤 지역에 들어왔다. 그 지역은 혼란에 빠졌고, 지금까지 공적인 발언을 한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던 한 주부가 그 지역의 평화를 위해 전투적으로 활동했다는 얘기다. 그 주부의 활동은 불안, 증오심, 가족애 등에 따른 것이었고 그것이 정치적인 정체성을 형성했다. 공적인 문제를 긍정적, 적극적인 요인이 아니라 적개심, 불안 등 부정적인 요인을 통해 확립해 간다는 것이다. 바우만은 거기에 언론이 개입되면 자유로운 언론 공간이 없어진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서의 북한 보도도 마찬가지다. 일상적인 가족 사랑과 국가적인 공동체가 연결이 돼서 폐쇄적인 보도가 확립된 게 아닐까 한다. 즉 내적인 불안을 부추기는 결항성과, 적국을 만들어내는 집단국가가 생겼을 때 자유로운 언론 공간은 너무 쉽게 소멸되는 하나의 사례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반일적인 보도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불안, 증오, 적의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지렛대로 해서 공적인 것이 확립되어 갔을 때 아주 강한 압력과 대립이 성형성된다는 것을 우리는 일상생활을 통해 알 수 있다.
냉전의 불완전한 붕괴
교토(京都)대학의 야마구라 시이치라는 동아시아 전문가의 말을 빌린다면 동북아 지역은 세 가지 단층으로 나눌 수 있다. '관계(nexus)로서의 동아시아', '역사로서의 동아시아', '미래를 향한 프로젝트로서의 동아시아'가 그것이다. 관계로서의 동아시아는 분명 현재의 동북아와 관련된 것이다. 그렇다면 동북아는 어디인가? 여러 이론이 있지만 경제적으로만 보자면 일본, 한국, 중국대륙, 경우에 따라 대만과 몽골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그러나 나는 6자회담으로 대표되는 6개국을 동북아 지역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본다. 즉 남북한과,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협의의 동북아는 역시 한중일 3국을 지칭한다. 3개국은 세계 경제 안에서 엄청난 역할을 하고 있다. 동남아를 포함해 동아시아에서의 무역은 유럽연합(EU)에 비견될 정도로 커졌다. 외화의 이동, 인적·물적 이동, 학술의 이동, 문화의 이동 등은 실체적으로 EU 통합에 필적할 만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지역에는 여전히 국가의 로컬리티가 남아 있고 국가간 대립은 경제·기술·문화의 교류와 비대칭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대중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 한류(韓流), 일류(日流), 화류(華流)가 있지만 한편에서는 혐한(嫌韓), 혐중(嫌中), 반일(反日)이 있다. 이렇게 보더라도 다양한 관계, 넥서스가 있는 한편으로 그에 대한 일종의 안티테제가 있다. 이런 가운데 이 지역에 제대로 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나. 어떤 아이덴티티를 형성할 것인가.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그것은 냉전의 붕괴라는 것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와 민족으로 분열·대립되고 내전의 상처가 있는 이 지역에서 하나의 틀이 붕괴되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완전히 붕괴된 게 아니라 형태를 바꿔 가치와 행동과 문화의 패턴을 형성하고 있는 요인이 여전히 남아 있다.
기억의 인터페이스를 구축하자
둘째, 역사로서의 동아시아는 이 지역이 EU 및 서유럽과 다른 것은 역사의 무게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전을 했던 분단국가가 현존하고 있다. 역사를 둘러싼 반목도 있다. 1995년 <타임>지가 '역사의 전쟁은 끝났나'라는 특집에서도 일본이 어떻게 역사와 싸우고 있는지에 대한 기사를 썼다. 과거의 역사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종군위안부, 오키나와, 남경대학살 등을 둘러싼 역사 문제가 있다. 이것은 중국에서의 역사 문제, 한국에서의 베트남전 문제 등과도 관련이 있다. 한·중·일이라는 국가의 단위로 봤을 때 역사라는 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역사가 어떻게 기록되고 있고, 어떤 식으로 국가적 정체성과 역사가 형성됐는가, 역사의 기억에 대한 공유가 가능한가 등을 한국의 대학과 시민사회, 저널리스트들과의 관계를 통해 심화하고 기억의 인터페이스를 구체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의 전쟁에 대한 기억, 그 가운데서 오키나와 전쟁에서 싸우던 이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상처입은 사람들, 중국에서 상처입은 사람, 동아시아에서 죽은 사람들은 입장이 매우 다르다. 과거 식민지 지배와 전쟁의 기억이 한국과 북한에 있어 어떻게 형성되고 변질되고 창조됐는가를 우리는 무릎을 맞대고 여러 형태로 논의할 수 있다. 그러면서 상호간 기억의 인터페이스를 확대하는 대학과 저널리스트와 시민사회의 연대가 가능하다고 본다. 이런 움직임이 작게나마 여러 사회단체에서 시도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6자회담의 새로운 의미
세번째는 동북아를 하나의 프로젝트로 생각하는 것이다. 프로젝트로서의 동북아를 생각했을 때 동북아는 로컬한(지방적인) 것과, 내셔널한(국가적인) 것과, 리저널한(동북아 지역적인) 것이 중층적으로 연계돼있다. 나는 규슈 구마모토에서 태어났다. 규슈는 한국과 중국의 관광객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상호 의존이 심화된 상태다. 규슈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면 부산, 서울, 상하이가 도쿄보다 가깝다. 그렇게 보면 로컬한 것이 인터로컬(지방간)하게 혹은 리저널하게 결부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로컬'로서의 동북아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내셔널로서의 동북아 즉 국가간, 국민간 관계로 나아가는 동북아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6자회담이다. 안보문제는 로컬한, 내셔널한, 리저널한 관점 모두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그것을 가장 첨예하고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6자회담이다. 우리는 국가간 관계없이 미래 논할 수 없다. 그러나 국가간의 관계에서만 미래를 논하는 것은 과거의 경험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국가는 만능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6자회담을 다자간 안보틀로 삼아야 하고, 그를 통한 상설기구가 만들어져 군비, 군축, 대량살상무기 상호관리, 신뢰조성 메커니즘을 위한 틀을 만들어야 한다. 최근 6자회담에서 나온 합의에는 5개의 실무회의 중에서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의 메커니즘을 논하는 실무회의가 있다. 나는 그런 프로젝트를 통해 현실이 그걸 따라가고 있는 걸 보면서 일종의 확신을 갖는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베트남전과 한국전쟁이라는 최대 규모의 준국제전쟁이 냉전 시기에 일어났다. 두 전쟁의 사망자만 해도 600~700만 명이고 미군도 1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한국전쟁에서는 정전협정이나 평화협정 없이 60년이 흘렀다. 독일, 서유럽과는 달리 이 지역에는 또다시 전쟁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 6자회담은 바로 이런 상태에 종지부를 찍고 다자간 안보틀을 형성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일본의 현실을 생각하면 국가의 행위와 여론에는 괴리가 있다고 본다. 국가의 현실주의와 여론의 비현실주의가 괴리를 나타내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굉장히 어려운 문제지만 6자회담의 귀추가 이 지역이 진정으로 동북아로서의 지역성을 발휘할 것인가를 결정할 것이다.
둘째, 프로젝트로서의 동북아를 생각할 때 각국의 국민공동체가 분열하고 대립하는 게 아니라 동북아라는 지역 네트워크가 중층적이고 다원적으로 확산되는 프로젝트로 생각하고 싶다. 그같은 지역 네트워크가 보다 강화되고 동북아를 우리의 생활 현장으로 실감하게 되는 시대를 앞당길 수 있다면 동북아를 덮어온 내셔널리즘이라는 괴물은 더 이상 날뛰지 않고 새로운 지역통합의 시대로 나아갈 것이라고 기대해왔다. 그런 점에서 저널리즘의 의의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연대의 복원
저널리즘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매개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언론 공간에서 그 사회가 공유해야 할 과제를 발견하고 분석해 제시하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 발신할 것인가, 무엇을 발신할 것인가가 언론의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언론인들은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기사를 썼고, 무엇을 보도했고, 무엇을 조사했고, 언론인의 원칙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중국에서 '반일폭동'이 일어났을 때, 혹은 북한 보도에 대해 지방지나 통신사는 어떻게 보도했는가, 한국과 중국에서 보는 관점은 무엇인가 등 각각의 시각의 호환성과 원근법을 얘기함으로써 자신의 기준을 다시 행각하고 재편하는 것이 한중일 저널리스트들에게 필요하고, 가능하다고 본다.
결론은 진부하다. 프랑스 혁명에서 말하는 자유, 평등, 연대(박애)라는 게 있는데, 나는 연대가 가장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재작년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폭동을 알아보기 위해 2주간 프랑스에 간 적이 있었다. 이민자들이 차를 불태우는 폭동이 있었지만 그걸 보면서 느낀 것은 프랑스의 공화성을 지탱하고 있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것 중에서 연대가 결여됐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연대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일을 통해 달성할 것인가는 동북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고, 대학과 저널리즘, 시민사회의 삼위일체를 통해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프레시안에서 옮김)
Wednesday, April 0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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